연인에 대한 기억을 잊기 어려운 이유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 조엘과 클레멘타인은 서로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지우려고 기억을 삭제하는 회사에 찾아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기억들이 완전히 삭제되진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일반적인 기억이 아닌, 감정이 개입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개입된 기억은 뇌의 해마와 편도체가 함께 활성화되면서 더 강하게 뇌리에 박히게 됩니다. 예를 들면 연인과 함께 갔던 데이트 장소의 배경음악이나 향, 이미지를 다시 접하면 그때의 감정이 다시 떠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프루스트 효과'라는 뇌과학 용어로 설명할 수 있는데, 감각 정보가 당시의 감정에 대한 기억을 바로 활성화시키는 현상을 설명해 줍니다.
특히 재미있는 점은 기억을 지우는 과정에서도 조엘이 연인인 클레멘타인을 끝까지 지키려고 했다는 점입니다. 이는 감정에 대한 기억이 '관계'와 관련된 의미를 포함하고 있음을 말해줍니다. 사랑했던 연인과의 기억은 단순한 정보가 아닌, 감정적인 측면과 의미가 함께 뇌에 심어져 더욱 명확하게 남아있게 됩니다. 영상을 통해 뇌의 변화를 꼼꼼히 살펴보면, 연인과의 아름다운 기억이 담긴 장소를 보게 될 때 뇌의 여러 가지 영역들이 한 번에 반응해서, 마치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비이성적인 끌림
가끔 자신과 반대 성향인 사람에게 비이성적으로 끌려서 연인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터널 선샤인'의 두 주인공의 관계는 이러한 비이성적인 끌림으로 인해 형성되었습니다. 심리학적 용어로 이를 '보완적인 끌림'이라고 말합니다. 내향적인 조엘은 클레멘타인의 자유롭고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는 성격을 접하면서 자신이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또한 클레멘타인을 통해 대리만족을 느끼게 됩니다. 한편, 즉흥적인 성격의 클레멘타인은 조엘이 지니고 있는 안정적인 모습에서 평화를 발견합니다.
실제로 스탠퍼드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서로 다른 캐릭터의 사람들이 함께 있을 때 뇌의 보상 시스템이 활성화됩니다. 도파민이 강하게 분비되어 강렬한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정반대 성향은 나중에 갈등의 씨앗이 되기도 합니다. 서로가 계속 반복해서 다투고 서로를 미워하게 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연애 초반에는 매력적으로 느꼈던 반대의 성향이 장기적으로는 스트레스 요소가 되어 서로를 힘들게 합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사랑은 성숙의 단계로 발전해나가게 됩니다. 학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연인 간에 갖는 '판타지'에서 '현실 직시'의 단계로 이동하는 필수적인 과정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진정한 사랑의 출발점으로 설명합니다.
재회를 통한 관계 회복
이터널 선샤인의 마지막 장면에서 두 주인공은 각자의 단점을 인지하면서도 다시 연인이 되기로 결정합니다. 이는 깊은 심리학적 통찰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연애 패턴은 어린 시절 만들어진 애착 스타일에 영향을 받습니다. 클레멘타인의 불안정형 애착과 조엘의 회피적 성향이 부딪히면서 관계가 무너졌지만, 이후 서로 지닌 상처를 감싸 안아주면서 새로운 관계가 열릴 수 있는 여지가 생기게 됩니다. 특히 '외상 후 성장' 이론에 의하면, 트라우마를 경험한 이후 이를 제대로 치유하면 오히려 그전보다 더 성숙한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신경가소성 이론에 의하면, 뇌는 일생 전체에 걸쳐 변화가 가능합니다.
뇌에 새겨진 과거의 상처가 새로운 경험들에 의해 다시 구성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 속에서 두 사람이 다시 관계를 맺는것은 단순히 연인간의 만남과 헤어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전보다 개선된 뇌의 상태로 완전히 달라진 연인 관계를 새롭게 시작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듯, '이터널 선샤인'은 두 주인공을 통해 상대방을 진정으로 수용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보여줍니다. 어떤 통계에 따르면, 이별 후 재회하여 다시 만나는 연인의 약 65%가 그 전보다 더 깊은 커뮤니케이션을 토대로 관계를 이어나간다고 합니다.